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윤동주의 산문은 시에 비해 많이 읽혀지지 않고 있지만 산문은 윤동주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이다. 그 당시의 생활이 담긴 산문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젊은 윤동주의 세상에 대한 고뇌와 삶을 대하는 모습을 그림처럼 떠올리며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글은 70퍼센트가 한자로 되어있어 우리는 일상 대화 속에서도 한자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 때문에 한자를 알고 단어를 해석하는 것은 모르고 해석 할 때보다 단어에 대한 이해가 빨라지고 어휘력이 향상,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윤동주 산문집은 원문에 담겨있는 한자를 그대로 실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도 그 뜻을 바로 이해하며 읽어보고자 하였다.
한자의 뜻을 살펴보며 글을 읽으면 그 시대의 이해와 윤동주의 삶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글을 쓰며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던 윤동주의 꿈이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함께하길 바란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인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직접적인 무장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저항시, 그리고 삶의 고뇌에 대한 시로 일본 유학으로 인해 민족의 걸어가야 하는 길과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이에 대한 부끄러움을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윤동주를 주로 시로 투쟁한 인물이라고 배우지만 2010년에 세상에 공개된 재판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많다. 윤동주는 당시 악명 높았던 특고 앞에서도, 일제 재판관 앞에서도 당당했다. 부끄러워하던 소극적인 이미지의 시인은 사라지고, 형사 앞에서도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과 대책을 열정적으로 토로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저항의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선명히 다가온다. 윤동주의 판결문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운동 방침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적시돼 있다.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대한민국 문학사에 큰 기여를 한 문인이다. 더군다나 1930년대부터 일제의 강압과 회유책에 의한 문인들의 절필, 변절이 심화되어 1940년대쯤부터는 다수의 문인들이 절필하거나 친일파로 변절했기 때문에, 윤동주는 이육사와 더불어 민족시인으로 추앙받는다.